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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리본자수의 역사
   리본은 역사상 고대의 문명에서 형대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목적을 가진 장식품으로 항상 중요하고 소중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들의 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리본이 이용됐고, 로마에서도 금과 보석등으로
리본을 치장하고, 여자들의 머리에 솜씨있게 장식되었다.
또한 리본은 옷들을 장식하는데도 사용됐는데,리본의 장식과 색깔에 의해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을 구별짓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중세시대 이탈리아에서는 리본이 의자의 등받이나 캐노피,혹은 겨울에
추위를 막기위해 사용했던 두꺼운 커튼들을 묶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리본의 사용이 광범위하게 증가한 것은 15세기 무렵 실크가
프랑스 남동부 리옹지방에 이르면서 부터이다.
지중해성 기후는 양잠에 필수적인 뽕나무의 생육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고,
이는 당시 매우 값비싼 실(thread)인 실크의 생산을 촉진했다.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진 후 프랑스 왕의 통치하에서 실크리본의 수요는 급등 했다.
왕과 귀족들은 가장자리를 금으로 두르거나 무늬를 넣어 만든 리본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옷들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1446년에, 루이11세는 리옹의 사람들에게 직조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직조공들을 궁정에 초대했다.
그 계획이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되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와 리본을 짜기 위한 다양한 크기의 직기들이 만들어졌다.

  1560년에 실크생산의 중심부였던 리용에서는 리본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여
5,000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리본 짜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값 비싸고 사치스러운 리본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 Velzy 에서 Saint-Etienne에 이르는 대략 45마일 이상 되는 지역이
실크리본의 주산지로 자리잡아 갔고, 1660년경에 이르러 Saint-Etienne와
그 주변의 지방에는 리본과 3,700여 종의 브레이드를 생산해 내는
8,000여대 이상의 직기가 있었다고 한다.
 
  17세기에 이르러 리본에 대한 많은 수요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리본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시대로 간주되게 했다. 
보석과 넣어 함께 짠 리본으로 구두를 장식하고 이탈리아의 패션에 영향을 받은
루이 16세는 그의 귀족들에게 까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옷을 입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이르러 옷들은 더 풍성하게 늘어뜨려지고
리본들로 가득했다.
많은 리본을 사용하고 가슴 부분에 주름(Pleats)을 잡아 풍성하게 한 "프릴드레스(Frill Dress)"는
극히 인기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의상은 자신이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살롱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원했던 궁정출입 귀부인들에게는 특히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리본자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은 18세기부터 인데,
수 십년 간에 걸쳐 여성들은 실크리본으로 그들의 드레스에 수를 놓았다.
코르셋 위에 입는 보디스는,무수하게 흩뿌려진 듯한 작은 꽃과 잎들로 수 놓아진
로코코 스타일의 작은 장미와,진주 구슬, 크리스탈 등으로 장식되었다.
전체적인 예복의 필수적인 한 부분으로 간주되었던 여자 란제리는 더욱 더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변해갔다. 
  바늘과 리본을 생산했던 일부 솜씨있는 장인들은 "왕실 공급업자"라는
직위를 부여 받으면서 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만든 바늘과 리본은 명작으로 인정 받으면서 오늘날까지도 런던 박물관과
남아프리카의 프레토리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실크리본자수는 프랑스로부터 곧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전파됐고,
특히 영국을 통해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퍼져나갔다.
리본자수가 가장 크게 번성하였던 시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들에게 크게 인기있었던
1870 ~ 1880년대로서 이때에는 드레스 외에도 양산,램프의 갓, 크레이지 퀼트,실내장식과 모자 등
다양한 소품장식을 위해 수놓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자의 외형상의 미적인 측면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여성 노동력의 활동성과 실용성에 밀려 점차 중요성을 잃기 시작했고, 리본자수도 점차 그 빛이 희미해 졌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북미와 호주 등지에서 다시 어떤 부활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리본자수는 새로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오랜 빛을 다시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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